감자를 캐며
감자 넝쿨을 뽑으면 크고 작은 뽀얀 감자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있다. 그런데 어김없이 한 가운데는 쭈그러들고 썩어 검게 변한 조각난 감자 하나가 매달려 있다. 씨감자다. 종족보존의 방법이 이처럼 원시적일 수가! 고추처럼 씨로 심거나, 마늘처럼 쪽을 갈라 심거나, 고구마처럼 순을 내서 잘라 심는데 이건 아예 살을 베어내 갈라 심는다. 번식하는 방법이 그 어떤 식물보다도 리얼하다.
아마도 어머니의 모성과 가장 흡사한 것이 이 씨감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소설 전체에는 어머니의 모성과 씨감자의 모성이 들어있다. 이란 작품 속에는 그것을 형상화 하였다.
장마가 진다 하여 오늘 감자를 캤다. 올 해는 우리 먹을 것만 심었더니 딱 세 박스 나왔다. 좀 굵고 잘 생긴 것들을 골라 하나는 큰 딸네, 하나는 작은 딸네 것으로 챙겼다. 그러고 보니 잘고 못생기고 찌그러진 것들만 우리 집에 남았다.
내 유년 시절은 감자에 대한 추억이 유난히 많다. 아마도 성장기의 허기를 채워준 것 대부분이 감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궁이에서 폴폴 나는 감자 굽는 냄새. 지루하고 긴 장마 때 가마 솥에 쪄 먹는 감자 맛. 배가 고플 때는 양은솥에서 퍼다 먹는 통감자 조림. 보리밥에 얹어 함께 먹는 감자밥. 그리고 썩고 벌레 먹고 찍힌 감자를 우물가 항아리에다 놓고 썩혀 만든 녹말로 만든 감자떡. 더운 여름날에 먹은 감자 부침. 감자 고추장찌개. 감자 수제비 감자 칼국수..... 넉넉지 않은 유년의 추억은 대부분 먹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긴 장마 통에 가마솥에 사카린을 조금 넣고 노릇하게 쪄낸 감자는 그야말로 감자의 백미다. 우린 큰집과 위아래 살아 모든 간식은 큰집에서 고모 삼촌 사촌들과 함께 먹었다. 여름 내내 옥수수와 감자와 오이를 깨물어 먹으며 자란 우리는 이들은 김포 식구들이라고 말한다.
모두 다 자라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가정을 이루고 산다. 여자들은 지금도 감자와 옥수수를 찌고 오이를 깨물어 먹으며 살지만 도시 아내를 얻는 삼촌들은 도시 식으로 산다.
작은 아버지가 작은 엄마께 감자를 밥 위에라도 얹어 쪄 달라고 하면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한두 번 쪄 주다 말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작은 엄마도 임신만 했다 하면 감자를 폭풍 흡입한단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나면 도로 입맛으로 돌아가지만 그렇게 태어난 사촌은 김포 식구에 편입된다.
이젠 김포 식구들은 제각각 놓인 자리에서 늙어가지만 감자를 캐니 추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