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강산이 네 번 바뀐, 아니 변화가 빠른 요즘 세상에는 수십 번도 바뀌었을 시간인, 40년 전 그때 그 시절 선생과 제자가 만났다. 첫 교감 발령을 받아 부임한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첫 발령을 받아온 초임 선생님까지 모두 첫 번째로 시작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선생님들에게는 첫사랑과 같은 곳이다.
열다섯이던 제자들은 55세가 되고 첫 발령을 받은 나는 지금 65세가 되었다. 똑같이 머리 허옇고 똑같이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모습이지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어제인 듯하다.
이천 읍에서 버스로 비포장도로를 50분이나 달려야 나오는 곳, 날이 궂으면 밥 먹듯이 버스가 결행하는 오지 마을. 비가 오는 날이면 발목까지 빠지며 학교에 오던 아이들. 농번기 때는 일손을 돕기 위해 번번이 학교에 결석을 해야 했고, 학교에 가면 길 닦고 꽃 심기에 동원되어 학생들이 오히려 공부를 좀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쳐 댔던..... 그 아이들이 자라 국회의원이 되고 변호사가 되고 회사 중역이 되고 CEO가 되었다. 산골 오지 마을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가방을 둘러메기만 하면 2킬로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 학교에 등교했다는 석준이는 지금 이천지역 국회의원이 되어 힘들고 바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때 다져진 체력으로 조금도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만 나와 구로공단의 공순이가 되어 집안 살림을 도왔던 윤하는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 지금은 안산에서 자동차 부품 공장을 하는 CEO가 되었다. 게다가 친구의 국회의원 선거유세 때 찬조연설을 멋지게 해내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흐뭇했다.
나는 그 당시 아이들을 보며 도시에 새 물을 공급하고 새 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은 흙에서 나서 자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목까지 빠져가며 학교를 등교해 본 사람만이, 모내기철이면 동원이 되어 밭두렁에 앉아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아욱국을 먹어 본 사람만이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민생을 알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 아이들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생각만으로도 내게 활력을 주는 아이들이다. 지금은 오십 중반이 되었지만 예전의 시골에 두고 온 열다섯 살 그 아이들이 지금도 늘 미안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