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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태 추수하기

조선오이 2017. 11. 5. 09:36

 

서리태는 서리가 내릴 때 추수를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구마도 캐고 땅콩과 생강도 캐고 들깨와 팥도 수확하고 메주콩 쥐눈이콩 등등 다 수확하 고 가장 늦게 수확을 하는 것이 서리태다.

텅 빈 밭에 마지막 까지 버티고 있는 작물이다.

 

아버지와 농사를 지을 때 서리태를 많이 심었었다.

그해 별안간 취위가 몰려와  콩이 여물기도 전에 그냥 얼어 버렸다.

여름 내 김매고 순을 따 주던 수고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해 서리태 값이 무척 비쌌다.  

 

오늘 남편과 들에 나가 서리태를 꺾었다.

집으로 콩대를 가져올 수가 없어 둘이서 앉아 콩꼬투리를 땄다.

베란다에 말렸다가 두두려 콩을 수확할 생각이다.

이것은 아버지로 배운 것이다.

남편과 함께 콩꼬투리를 따면서 아버지와 농사짓던 시절을 얘기했다.

아파트 마당에서 콩을 털던 엄마 아버지가 종일 생각이 났다.

 

저녁에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친정 아버지 생신이라 함께 희방사 계곡으로 단풍구경 갔다가 찍은 사진이었다.

친정부모와 함께 찍은 친구의 사진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비오는 날 콩모종 하던 일이 떠올랐다.

비가 와 일을 중단할 줄 알았는데 비가 와 콩이 잘 살 거라고 그 밭에 콩모종을 다 내고서야 허리를 펴셨다.

아버지는, 아니 할아버지는 남의 집 농사가 우리 집 농사보다 더 잘 된 꼴을 못보셨다.

퇴비를 듬뿍 주고 김을 매 주고 하여 농사를 훌륭히 지셨다

,

서리태를 잔뜩 둔 밥을 드시고 콩누른 밥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나는 지금의 내 나이 때의 아버지 모습을 어제런 듯 기억하고 있다.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교단에서 정열을 불태우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가끔 운전을 하면서 내가 언제까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순발력도 떨어지고 판단력도 잘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심성은 많아진다. 그래서 더 안전하다고 믿고 싶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마도 십여년은 더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는 66세에 정년 퇴직을 하시고 운전면허를 취득하셨다.

그리고 십년을 알뜰히 운전을 하셨다. 

가시기 일년 전 더 두면 운전대를 안 잡을 수 없어다고 아끼던 차를 처분하셨다.


내가 지금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

그렇게 점점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