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초로 본 영화는 장마당에다가 천을 둘러쳐 놓고 무슨 반공영화를 상영해 주던 것이었다. 제목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지만 사진 조차 거의 없던 시절에 움직이는 사진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 후 초등학교 와 중학교 때 몇번의 단체 관람이 있었고 고등학교를 인천으로 진학하자 그럴 듯한 영화관이 있어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전격적으로 영화를 보았다. <무기여 잘 있거라>.< 초원의 빛><스잔나><벤허><기적><노트르담의 고추>......등. 내 인생의 르네상스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 친구들이 영화 얘기를 해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문화실조에 걸린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찮가지였다. 그때는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고, 나는 자연이 영화와 멀어졌다. 그 시절 상영해주던 주말의 영화는 공짜로 볼 수 있는 영화라 즐겨 챙겨보았다. <카사브랑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시골학교 선생을 할 때 꼭 나와 같이 문화실조에 걸린 그 아이들이 딱해 주말의 명화는 반드시 챙겨보라는 당부를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 대답이 전기 달리지 말로 빨리 불끄고 자래요. 라고 대답했다.전기요금이 무서웠던 시절에 나도 익숙히 듣던 잔소리였다.
이제는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건 집에서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꿈같은 일이다. 지난 달부터 그간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 중 공짜로 볼 수 있는 영화를 티브이에서 꺼내 보았다. <에밀졸라와 세잔느> <코고샤넬과 스트라빈스키><섹스피어 인 러브><실비아><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투 러벌스><블루 발렌타인> <입생로랑><써칭 훠 슈거맨> <다가 오는 것들> 요즘 내가 본 영화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독특했던 영화는 <써칭 포 슈가맨>이었다. 슈가맨을 찾아서....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남 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엘비스 판 보다 더 많이 팔린 '로드리게즈'라는 가수가 있다. 그 가수에 대한 말들만 무성할 뿐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한 제작자가 무대 위에서 공연 중 자살했다는 그 가수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그만큼 그 나라 사람들은 로드리게즈에 대해 목말라했다. 그러나 미국 사람이란 것 뿐 로드리게즈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제작자는 우유곽에 사진과 함께 이 사람을 찾습니다.란 전단을 내고 웹싸이트에 그의 사진과 음반을 올려 그의 흔적을 찾았다. 한참 후 그 사람이 딸이란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아버지에요. 아버지는 지금 디트로이트에 계세요'
제작자가 디트로이트에 가서 만난 로드리게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명인사인 줄도 모르고 화장실 청소나 낡은 건물 부수는 가장 밑바닥 일을 하고 있었다. 영화 도중도중에 그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노래의 가사가 밥딜런 수준으로 의미가 있었다. 그는 음반을 두 장 낸 가수였다.
예전에 그의 음반을 낸 제작가가 인터뷰를 했다.
어느 날 제작자에게 제보가 들어왔다. 디트로이트에 아주 기가막히게 노래를 잘 부르고 잘 만드는 가수가 있으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가 물어물어 술집에서 노래하는 그를 찾아갔다. 노래를 듣는 순간 밥딜런이나 부르는 가사와 노래라 생각했다. 그는 로드리게즈의 음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고작 6장이 팔렸다. 참패였다. 라틴계의 그의 이름이 미국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그 음반 한장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들어가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는 영화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다.
그 후 남아프리카에 가서 몇번의 공연을 하였다. 공연 때마다 5만석의 콘써트 티켓은 매진이 되었다. 43년생인 그는 6번의 공연을 남아프리카에 가서 했지만 지금도 디트로이트에서 여전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낡은 건물 부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그 일을 하는데 불만이 없다고 했다.
영화가 특별히 재미있다거나 잘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묘한 여운을 준다. 우리는 재능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자살을 하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그래서인지 음악적인 재능있는 사람이 화장실청소를 하면서도 불만없이 사는 달관한 태도가 여운을 준다.
지금 한 방송국에서 <슈커맨>이란 제목으로 한때 시대를 풍미했다가 세상에서 사라진 가수가 나와 노래부르는 프로그램의 방송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디트로이드 어느 뒷골목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낡은 집을 부수는 일을 하고 로드리게즈의 삶을 이 물질 만능인 이 시대에 반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