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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캐기

조선오이 2016. 10. 3. 01:55

 

 

 

농사 중에서 그런대로 수월한 것은 고구마 농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봄에 고구마 줄기를 고랑에 꽂아 놓고 풀관리만 해 주면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줄기는 여름내내 반찬으로 밥상에 올라온다. 고구마 줄기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한다. 심지어는 손주는 돌이 지난 후부터 이 고구마 줄기는 먹었다.

남편은 몇년째 고구마를 심어왔다. 봄에 고구마 순을 90%는 활착 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 비결은 다른 것이 없다. 물을 듬뿍 넣고 심으면 대부분 살아난다.

올 해 고구마 농사 역시 활착이 잘 되어 기쁜 맘으로 덩쿨이 뻣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그 순을 누가 똑똑 따 먹는 것이 아닌가. 뒤집어 씌운 비닐을 여기저기 억센 발로 찟어놓았다. 찢어진 곳에서는 잡초가 자랐다. 옆밭의 농부가 고라니 짓이라고 말했다. 고라니는 날이면 날마다 내려와 고구마순을 먹었다. 고구마는 줄기나 알이나 모두 고라니가 제일 좋아한다는 식물이라 한다.

옆밭 농부가 꽤를 내 길목에 덧을 놓았다. 어느날 나는 보지 못했지만 꽤 큰 고라니가 걸려들었다고 했다. 그 뒤로 고라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올 해는 베로니카라는 품종을 심었다. 일명 꿀고구마라고 한다. 캐 놓으면 밭고랑은 꽃이 핀듯 붉은 빛깔로 덮였다. 쏙쏙 예쁜 고구마가 나오니 캐는 재미도 있다. 맛도 좋다. 밤고구마인데 목이 덜 메이고 달기가 그야말로 꿀이다.

고구마는 해마다 품종이 업그레이드 되어 해마다 맛이 좋아진다. 전에는 호박이나 노랑 고구마만이 최고로 여겼는데 베로니카도 좋은 품종이다.

노랑고구마는 땅 속 깊숙이 알을 만들어놓아 캐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캐고 나면 병이나는 일이 다반사다. 그만큼 캐기가 힘들다. 그래서 해마다 캐기 쉽고 맛있는 고구마가 보완되어 나온다.

어릴 때는 고구마가 제일 맛잇는 음식이었다. 고구마 캐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고구마를 수확해 가면 동네 아이들은 삽을 들고 밭으로 몰려들었다. 삽으로 여기저기를 파면 가끔 고구마가 나왔다. 그 재미로 집 광에 고구마를 잔뜩 두고 밭을 파 헤쳤다.

벌써 몇년째 여고 친구들이 고구마를 캐러온다. 올 해는 아파트에서 시골 집으로 이사를 한 뒤라 친구들도 설레어하며 몰려왔다. 집과 밭이 붙어 있으니 편하다. 고구마 캐다가 집에 들어와 앉아 쉬며 밥을 먹고 다시 나가 캤다.

고구마 캐러 오겠다는 친구들은 대부분 엄마에 대한 향수가 있다. 엄마가 집 근처 버려진 땅을 일궈 콩을 심어 몇가마니를 수확했다는 친구. 엄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텃밭에 대한 추억을 버리지 못해 정원을 일궈 밭을 만들어 야채를 심어 먹었다는 미국시민권자인 친구도 있다.

수확이 늦은 호박고구마 한 고랑 남겨놓고 고구마 수확은 일단 끝냈다. 이제 밭에 김장할 배추와 무와 파만이 자라고 있다. 한달 후면 저것들도 다 김치로 만들어지겠지. 그리고 한해 농사는 끝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