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노인의 몸은 초등학교 때 공작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수레 끄는 마부의 형상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철사를 돌돌 말아 머리를 만들고 팔과 다리와 목을 이어 붙였다. 그 위에 풀 먹인 화선지를 여러 겹 발랐다. 화선지를 바를 때 구부리고 돌돌 만 철사가 그대로 손끝에 만져졌다. 노인의 몸을 만질 때마다 그 철사를 만지는 느낌이다.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아 뼈대와 가죽만이 만져진다.
노인은 등받이가 달린 목욕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다. 왼손의 힘을 잠시라도 풀면 그대로 기우뚱하고 넘어질 자세다. 나는 노인의 가슴을 두른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고 오른손으로는 때수건을 들고 등을 문지른다.
노인에게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입뿐이다. 몸은 의지대로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입은 살아 쉬지 않고 웅얼거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모두 죽기 싫다는 절규와 욕이다.
이 년이 날 죽이려고 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여. 네년이나 혀 깨물고 죽어. 노인은 눈을 희뜩 거리며 험상궂은 얼굴로 마구 욕을 한다. 어김없이 노인의 입에서 다음 말이 삐져나온다. 죽기 싫어. 죽어서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기 싫단 말이야. 날 좀 살려줘.
노인의 뇌의 양의 거기까지다. 욕은 더는 첨가되지 않는다. 노인은 성이 차지 않는지 비쩍 마른 손을 들어 때린다. 몸의 힘이 다 손끝으로 모였는지 손매가 몹시 맵다. 무딘 바늘로 등을 찌르는 듯 천천히 통증이 온다. 입술을 깨문다.
소나기를 흠뻑 맞은 듯 머릿속에서부터 이마와 등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탕 안은 여름날 도가니탕을 끓이는 부엌처럼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하다. 때수건으로 몸에 비누칠을 한다. 밑을 닦기 좋게 U자형으로 파놓은 목욕용 의자 밑으로 손을 넣는다. 말라비틀어진 고구마 같은 노인의 성기가 만져진다. 때수건 든 손에 힘을 주어 북북 문지른다. 노인의 욕설이 멈춘다. 노인의 눈에 잠시 생기가 돈다. 네 남편 것도 이렇게 닦아 줘? 치매 노인도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노인을 끌어다가 침대에 누이고 성인용 기저귀를 두른다. 그 속에 패드 형 기저귀를 또 넣고 테이프를 단단히 부착한다.
띡 띡 띡 번호 키를 누르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집의 전자음은 유난히 크다. 주인 여자가 들어올지 남자가 들어올지 잠시 긴장을 한다. 거칠게 문을 열고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여름인데도 여자에게서는 찬바람이 인다. 며칠 전 베란다 밖에서 여자가 한 이웃과 웃으며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주인 여자인지 몰랐다. 봄바람 같은 훈훈함이 풍기는 창밖의 여자는 집 안에서와는 생판 달랐다.
이집 부부는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드물고 함께 들어오는 경우는 더 드물다.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처럼 거실을 중심으로 여자는 안방 쪽을, 남자는 출입구 쪽의 방을, 맨 끝 방에는 고관절이 부러져 걷지 못하고 치매까지 많이 진행되고 있는 노인이 차지하고 있다. 각방에는 각자의 침대가 놓여 있다. 서로서로 말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집 안의 사람들은 제각각 들락거리고 먹고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
목욕탕 청소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니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기저귀 밖으로 노인의 성기가 공기가 다 빠져나간 풍선처럼 검은 빛으로 늘어졌다. 이불이며 벽에는 오줌이 튀어 지린내를 풍긴다. 노인은 요의를 느낄 때마다 기저귀 속에 있는 성기를 꺼내려고 몸부림친다. 기저귀를 고정시킨 테이프가 소홀히 부착되었을 때는 그것을 꺼내서 이불 위에 오줌을 내지른다. 어떤 때는 의식이 돌아와 성한 사람처럼 두 손으로 테이프를 뜯고 꺼내기도 한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바지춤에서 성기를 꺼내 들고 서서 소변을 보던 예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이불을 뜯어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아침에 청소한 방을 다시 청소한다. 노인의 오줌에는 쉰내가 배었다. 대변에도 몸에도 심지어는 노인의 웃음 속에도 쉰내가 배여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버스정류장은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유리를 둘러쳐 놓아 바람조차 없다. 아스팔트 위로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찜통에서 쪄낸 생선처럼 내 몸도 흐물흐물 익을 것 같다. 정류장 앞으로 지나던 승용차 안에서 운전하던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그는 아는 체를 할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지난다. 주인집 남자다. 남자는 사거리에 있는 주유소 사장이다. 차가 아파트 입구로 사라진다.
버스에 오르니 에어컨이 고장이 났는지 숨이 턱 막힌다. 운전기사는 런닝 셔츠를 배 위까지 걷어 올린 채 운전을 한다. 아무도 기사의 무례함을 탓하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오늘의 날씨를 보도한다. 기상 게스트는 오늘이 올 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고 말한다. 목소리가 더워서 헐떡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폭염주의보는 그제도 내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렸다. 지금 같아서는 입추가 오고 처서가 지나도 이 끔찍한 폭염은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겨울이나 봄까지, 아니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남편은 결혼 7년 만에 객사했다.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누군가가 부른다고 나가더니 돌아올 줄을 몰랐다. 집 근처의 술집을 다 뒤지다가 지쳐 막 집에 들어왔을 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찰이었다. 술집 계단 밑에 죽어있는 남편을 경찰이 병원에 옮겨다 놨다고 했다. 누가 떼밀었는지, 그냥 발을 헛디뎠는지 본 사람이 없었다. 남편의 사인은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그렇게 죽었건만 내 등 뒤에는 남편 잡아먹은 여자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오래된 주택가에 버스가 선다. 기사가 안녕히 가시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한다. 의례적이지만 오늘 하루 유일하게 받은 대접이다.
나에게도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남편이 죽자 시댁에서 더부살이를 살았다. 공직자 며느리로 난 언제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시아버지는 고위공직자란 신분뿐만 아니라 상속받은 꽤 넓은 땅을 갖고 있었다. 은행직원들은 사업하는 시동생에게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빌려 주며 시아버지에게 보증을 서게 했다. 시아버지가 퇴임을 하고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동생의 사업은 부도가 났다. 시아버지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은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가구 주택이 늘어선 짧은 골목을 지난다. 시멘트로 테를 두르고 협소하게 만들어진 화단이 담에 붙어 있다. 화단 오른쪽으로는 음식물을 덕지덕지 바른 쓰레기통이 냄새를 풍긴다. 반쯤 열린 통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든다. 손톱만한 파리의 푸르스름한 몸통이 햇볕에 반질거린다. 왼쪽으로는 재활용 수거함들이 종류별로 나란히 섰다. 가만히 보니 화단 가운데 배롱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웠다.
한여름 고즈넉한 산사를 단장하고 있거나, 잘 꾸며진 아파트 정원에 서 있어야 할 배롱나무가 쓰레기들 한가운데 있다. 나무도 누군가가 내다가 버린 쓰레기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쓰레기더미에 묻혀 있는 배롱나무는 때가 되었다고 꽃을 피운다. 작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송이를 이뤘다. 붉은 꽃이 땡볕에 녹아내릴 듯하다.
재활용 분리수거함 옆으로 지하방 창문이 보인다. 방범용 쇠창살이 창문을 덮었다. 문을 열자 곰팡내가 콧속을 밀고 들어온다. 반쯤 가린 창문에서 희미하게 빛이 들어온다. 대낮인데도 해질녘 같다. 불을 켜고 선풍기를 돌린다. 방향을 바꿀 때면 무엇에 닿는지 선풍기는 덜덜거린다. 돌아가는 선풍기에 얼굴을 대고 뜨거운 열기를 식힌다.
들어왔네요. 4층에 사는 집주인 여자다. 뜻밖의 방문에 얼른 일어나 문을 열어준다. 큰 얼굴에 작은 눈의 부조화가 부담스럽게 보인다. 흘러내린 턱선 밑이 바로 어깨다. 짧은 목과 눈이 자라를 연상시킨다.
웬일인지 여자가 담뿍 웃음을 흘리며 들어온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어가지만 여자는 얼굴 마주 대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오백만원 보증금에 월 30만원이란 월세를 제 날짜에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내지만 보아도 못 본 체 인사조차 없던 여자였다. 그러던 여자가 나를 향해 계속 휴지처럼 구겨진 웃음을 풀어낸다. 여자의 얼굴이 낯설다.
여자는 기웃거리며 둘러보더니 무언가 물어 볼듯하다 그만 둔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고 있다. 남자의 흔적이다.
“ 남편이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해요. 자금을 대느라 잠시 이렇게 살고 있어요.”
궁금해 하는 여자를 위해 말을 꾸며 둘러댄다.
“아 그래요? 근데 아줌마는 무슨 일을 하세요.?”
여자가 여전히 예의를 갖추며 묻는다. 이번에도 요양보호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학원을 하고 있어요. 선생을 두고 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아요.”
“그렇구나. 아들은요?”
“고시공부 하느라 학교 근처 고시촌에서 있어요.”
“아! 명문대 다니는 아들이 고시 공부를 하는구나.”
“명문대요?”
여자는 들고 온 영수증을 내민다. 전기와 가스 요금고지서 그리고 아들의 대학등록금 고지서가 보인다. 여자가 웃는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다. 명문대 다니는 아들은 보증금 오백만원에 30만 원짜리 월세 방에 살고 있는 여자의 삶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는 듯했다.
“이집은 아줌마 혼자 쓰니 수도세는 오천 원만 내세요.”
공동으로 나와 세입자들이 만원씩 나누어 낸다는 수도요금을 깎아 주는 선심까지 쓴다. 나는 아들이 등록금을 준비하지 못해 삼 학기나 쉬었다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학원을 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요양보호사가 되기 전에는 빵집 직원으로 일했고 또 그 이전에는 정말로 학원을 했었다.
학원 운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학생들은 공부와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모이기 마련이다. 개그맨 같은 선생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험기간에는 근처 학교에서 몇 년 전부터 출제된 시험지를 모아서 중요한 것을 추리고 외우게 하였다. 학생들 성적이 올라가자 학부모들 입에 오르내리며 학생 수가 불어났다.
은행 융자를 잔뜩 얻어 연 학원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통장에 돈이 잠시 모아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가 우리 학원에 시한폭탄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그만 두기 시작했다. 선생님들 월급은 계속해서 나가고 운영비며 은행 이자에다가 월세까지 꼬박꼬박 나갔다.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아직도 건재한데 학원은 우박 맞은 배추밭처럼 구멍이 숭숭 나더니 마침내 폭삭 가라앉았다 급기야는 집안에 딱지가 붙더니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우리 딸도 이 댁 고시공부 하는 아드님에게 과외를 좀 받으면 안 될까요?”
아줌마 집이 이 댁으로 변하고 아들이 아드님으로 변하는 데는 명문대 등록금 고지서 한 장이면 충분하였다. 나는 모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 아들은 학원 강의만 하지 개인적인 과외는 하지 않아요. 그것이 수입이 훨씬 낫거든요. 이 집에 서너 번 왔었는데 못 보셨어요. 거 왜 있잖아요. 귀공자처럼 생긴 애. 승하. 박승하요. 우리 애가 승하를 닮았지만 승하보다 얼굴이 얄팍해서 더 곱게 생겼다고들 해요. 학원에서 우리 아들에게 강의 한번 들으면 성적이 쑥쑥 올라간다고 좋아해요. 이상해요, 잘생긴 명문대 생이 가르치니까 저절로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가나 봐요.”
아들에 관한 말을 할 때면 언제나 흥이 나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드님이 엄마 닮았으면 정말 잘생겼겠네요. 우리 딸도 어떻게 좀 안 될까?”
여자가 다시 치근댄다. 나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웬만하면 월세정도 감면받고 아들에게 가르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정이 있다. 아들은 지금 생계형 병역면제 신청을 해 놓고 있다. 면제를 받게 될 때는 마지막 학기 등록을 내야 되고 받지 못할 때는 군대에 나가야 한다. 재산과 월수입과 피부양자의 수가 병무청에서 정한 조건을 만족시킬 때 군대가 면제된다. 우리는 가족 이름으로 등기된 재산이 아무 것도 없고 올 해 내가 만으로 50이 되고 딸아이가 아직 19세 미만이니 피부양자 가족이 둘이다. 게다가 나는 몇 년 째 일정한 소득이 없다. 병무청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이 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게 해당된다. 허지만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내 나이에 대한 기준이다. 신청할 당시에는 오십을 며칠 남겨둔 상태이고 딸이 19세가 며칠 남아 있는 상태다. 딸과 나는 생일이 이틀 차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틀 때문에 면제 여건에 맞지 않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머릿속이 다시 막막해 온다. 얼추 판정이 내려졌을 기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면제되었다는 소식이 없다.
“우리 딸도 좋은 선생만 만나면 인서울 할 텐데....이 변두리에서는 좋은 선생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어떻게든 인서울 해야 할 텐데....그러지 말고 아드님께 얘기 좀 해 봐요.”
집 주인 여자는 딸 아이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선생 탓으로 돌린다. 여자는 미련을 못 버리고는 다시 한 번 치근댄다.
“ 따님은 공부 잘 해요?”
여자는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유전인가 봐요. 꼭 나 학교 다닐 때만큼 해요. 나 공부 못했거든요.”
공부를 잘했다고 말했어도 이보다 더 당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는 공부 잘 했니? 아들은 엄마 머리 닮는다고 잘 했겠지. 하지만 우리 집 지하방에 월세 살고 있지 않니? 난 공부 못했어도 다가구 주택 주인이다. 공부를 못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의 말이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남편이 죽자 갓 돌 지난 딸은 아비 잡아먹은 딸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딸을 나만큼 미워했다. 내가 딸과 합동으로 당신의 아들을 잡아먹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 사람들이 삼십대에 과부가 된 나와 돌쟁이 딸을 위로할라치면 시어머니는 아들 잃은 당신이 더 슬프다고 우리를 제쳐놓았다. 과부가 된 내가 오히려 시어머니를 위로해야 했다. 사춘기를 지나던 딸의 귀에 시어머니의 흉한 악담 소리가 들어갔다. 딸은 점점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이상한 친구들을 사귀더니 어느 날 가출을 했다. 일 년이 되어간다.
눈만 뜨면 미친 듯이 딸을 찾으러 다녔다. 인터넷 가출 청소년 카페에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중3여. 일랭(일행)이나 팸(훼미리)으로 끼워주실 분 구해요.란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언니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바꾸고 싶어요. 그년들이 나를 하녀 취급해서 도망 나왔어요. 혼자니까 무서워요. 빨리 팸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디는 까뮤였다. 까뮤는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미니핀의 이름이다. 메일을 보냈다. 동대문 전철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날 그곳에 꺄뮤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카페에서도 까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라는 여운을 남기고 여자가 나간다. 죽고 싶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
밤새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집 안도 집 밖처럼 습해서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세간마다 붉은 딱지가 붙어 있고 머지않아 집도 경매로 넘어가기로 되어있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훨훨 난다면, 세상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이 진절머리 나는 세상을 버린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고통은 사라지고 안락한 휴식만이 있어’ 깊은 바다 속 같은 어둠은 나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시끄러운 잡음 소리와 함께 울부짖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엄마가 엄마가 베란다 밖으로 뛰어 내렸어. 한 동안 울부짖던 시누이가 말했다.
시어머니는 선수를 치는 데는 슈퍼급 선수였다. 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시어머니는 다섯 군데 아픈 데를 대며 자신이 더 아프다고 했다. 남편 잃고 울고 있는 내게 아들 잃은 자신은 다섯 배 정도 더 슬프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마저 내 앞에서 선수를 쳤다.
자라목의 여자는 병도 주고 약도 주고 나갔다. 앞으로는 지하방에 산다고 더 이상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이 오른다. 세상살이가 성적순이 아니란 것이 약 이 오르고, 세상살이가 생긴 것처럼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약이 오르고, 세상살이가 노력하는 것만큼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죽고 싶을 만큼 약이 오른다.
작은 창문을 통해 책받침만한 서향 볕이 지하방까지 들어와 있다. 높은 습도와 더운 열기로 인해 목덜미에서부터 땀이 줄줄 흐른다.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가 옷을 벗는다. 거울 속으로 오십이 막 된 여자의 몸이 비친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 노을처럼, 매달 붉고 많은 양의 생리 혈을 쏟아내는 몸이 거기에 있다. 발악처럼 남자의 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몸이 거기에 있다. 젊은 날에는 오히려 남자 생각이 덜 났다. 사십 후반에 접어들고부터 내 몸은 발악하고 있다. 찬 물을 틀어 뜨거워진 몸을 식힌다. 물이 미지근하다. 물에다 얼음 한 사발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대학동창들과의 저녁 약속은 인사동골목에서 있다. 전철을 타자 광고전광판에서 기상 게스트가 입을 움직인다. 그 밑으로 서울 36도라는 자막이 나온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지만 지하철은 동굴 안처럼 시원하고 평온하고 한산하다. 내가 탄 칸은 폭염으로 인하여 냉방을 최대한으로 가동하니 시민들께서는 참고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가끔씩 폭염주의보가 내린 것 같은 내 인생에 냉방을 최대한 틀어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 본다.
음식점 안 역시 시원하고 평온하고 한산하다. 휴가는 갔다가 왔어? 음식점 주인인 정수가 반기며 악수를 청하며 말한다. 그때서야 휴가철이란 걸 깨닫는다. 세상은 나를 외로 세워 놓고 저 혼자만 앞으로 달려간다. 남편이 죽고 나서 휴가를 가 본적이 없다.
애써 웃고 있는 정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사랑이란 걸 한 이후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수는 나를 보면 눈시울을 붉힌다.
사랑은 적당한 구속과 집착이 필요하다. 그는 사랑이란 걸 했다지만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외로웠다. 가슴 속에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다지만 꺼내어 보이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한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 같았다. 식물처럼 다가가는 방법도 그것을 태우는 방법도 몰랐다. 그는 나를 지치게 했다. 화나게 했다. 그리고 떠나게 했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눈시울을 붉히더니 혼자가 되었다고 했을 때도, 부도가 나 벌려놓은 학원 문을 닫았다고 했을 때도 저렇게 눈시울만 붉혔다. 정수는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룸에서 먼저 온 친구들이 손짓을 한다. 휴가를 떠난 친구들은 없나 보다. 시어머니가 입원해서 못 나온 친구 이외에는 다 나왔다.
남편 잘 둔 친구는 남편 얘기만 하고 돈이 많은 친구는 돈 얘기만 한다. 남편 얘기 돈 얘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내게 돈 얘기만 하던 친구가 물었다.
“너네 박승하 닮은 아들은 졸업했니?”
그 친구가 처음 아들이 박승하 닮았다고 해서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아니 가을학기 한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이야.”
아들이 돈 얘기만 하는 친구 딸을 가르쳤었다. 친구는 마치 자기 사위라도 되는 양 떠들다가 학원이 부도가 난 걸 안 다음부터는 모르는 체한다.
“취직이 어렵다 어렵다 해도 너네 아들은 잘 되겠지 뭐. 니 아들은 요즘 세상에 천연기념물이야. 고시공부하면서 학원 강의도 하며 그렇게 집안을 돕는 것을 보면 효자야.”
남편 잘난 것이, 돈 많은 것이 미안한지 친구들은 한껏 아들을 부추긴다. 집이 경매 당하자 살림살이를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아들은 고시원으로 나는 친정 집으로 흩어졌다. 가출한 딸은 그때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아들은 학원에 나가 벌고 나는 요양사 자격증을 따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지하 방 보증금 오백만 원을 만들어 이삿짐센터에 맡긴 짐을 찾아왔다. 요양사 해서 벌었다 해야 대부분 생활비로 들어갔고 아들이 학원에서 벌어 만든 돈이었다.
부모들 얘기로 화제가 옮겨간다. 남편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하여 갈등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한 달씩 모신다는 친구도 있고, 시아버지가 잘 나가 아직까지 시집살이하는 친구도 있다. 이젠 요양원에 보내드리는 것이 흉이 아니다. 자연스런 대세라는 얘기들까지 흘러나온다.
나에게 재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주인 부부가 부부 사이를 악화시키며 까지 이불에 오줌발을 내뿜는 아버지를 집에 모시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부부싸움 끝에 시설에 모시자는 주인여자에게 남자는 소리쳤다. 아버지를 시설로 모셔? 그럼 그러자. 아버지를 시설로 모시고 우리가 아버지 거 모두 다 포기해. 주유소도 포기하고 땅도 다 포기해. 주유소가 있는 사거리 일대의 땅이 노인의 소유라 했다.
늘 그렇듯이 다음에는 건강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여기저기 하나씩 고장이 안 난 곳이 없다. 누구는 관절이 아프고 누구는 오십 견이 오고 누군 우울증과 불면이 함께 오고 누군 눈이 아프고 누군 체중이 불어나 한방약으로 치료중이고, 누군 이미 오래전에 폐경이 되고 ....미리미리 검진하여 고쳐 쓰면서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로 늘 결론이 난다.
이상한 일이다. 천해지니 아픈 곳도 없다. 어떤 날은 오전에 4시간과 오후에 8시간 일을 하고 돌아와 누우면 아침이다. 감기조차 걸려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며 살아가지만 소화가 안 되어 애쓴 적도 없다. 친구들은 관절이 아파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한다지만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내 관절은 끄떡없다. 폐경이 된 친구들은 우울증까지 호소하지만 때가 되면 오겠다고 단단히 약속한 손님처럼 하루도 늦은 적이 없이 달거리가 찾아온다.
젊은 날, 내가 차 버린 남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갖는 대학동창 모임에 나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나도 한때는 너희들보다 더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미팅에 나가면 언제나 주선하던 애와 짝이 되었다. 주선자에게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고르고 고른 것이 결국은 삼베천이라고 그렇게 많은 남자들 중에 고른 남편이 일찍 죽고, 오십에 들어선 지금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곳까지 내려와 서 있다. 하지만 나는 올라갈 것이다. 너희들이 속한 시원하고 평온하고 한가로운 그런 세상으로 반드시 올라갈 것이다. 그런 다짐을 하기 위해 나는 동창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가방 속에서 문자 신호음이 들린다. 가방을 열어 눈으로 문자를 확인한다.
오늘 8시. 난 OK사인을 보내고 폴더를 닫는다.
아들이 온다고 하니 먼저 가 보겠다며 일어난다. 화제는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다음은 점점 정이 벗어져 가는 남편들 얘기로 이어질 것이다.
“먼저 가게?”
카운터에 앉아 있던 정수가 일어나며 말한다.
“응. 아들이 온대.”
“별 일은 없고?”
사는 게 온통 별 일인데 별일이 없냐고 묻는다.
“응. 별일은....맨날 그렇지 뭐. 군대 나간 아들은 제대했어?”
“아니 제대하려면 33일 남았어. 첨엔 고생하는 거 생각하면 잠이 안 왔는데 이젠 눈에 안보이니까 오히려 편해지더라고. 그러니까 제대할 때가 되었네.”
“유학 간 딸은 잘 있어?”
나는 딸 안부도 묻는다.
“잘 있다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뭐. 애만 안 낳아 오면 된다 그랬어.”
세월이 무섭다. 윤리 교과서 같던 정수에게 애만 안 낳아 오면 된다는 말을 가르쳐 준 세월이 무섭다.
너를 지켜줄 수 있어서 기뻐. 여행길에서 돌아와 헤어지며 정수가 말했다. 내가 무슨 휴전선이라도 돼. 지켜 주게? 나는 중얼거렸다. 솔직히 여행길에 쫒아 나섰을 땐 모든 것을 다 각오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짐했던 그 각오가 부끄러웠다. 스무 살이 넘은 남녀가 한 방에서 이틀을 같이 지내고도 초등학생처럼 천진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친구지 그것은 연인관계가 아니다. 그날 이후로 정수는 내게 친구가 되었다.
정수에게서 대한민국의 오십대 남자의 평범한 모습을 본다. 내가 만일 그와 결혼했다면 시어머니의 말처럼 저 사람도 내가 잡아먹었을까?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면 남편은 지금 저 사람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안에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온다. 50대 여자들의 평균 모습을 가진 친구들이다. 나는 욕심이 없다. 그저 내 나이 또래들과 반쯤만이라도 비슷하게 살고 싶다.
낮에 보면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건물이 밤이 되니 마치 살아난 듯하다. 건물을 장식한 붉고 푸른 전등들이 번쩍번쩍 거린다. 모텔은 지하철에서 나와 산 쪽으로 얼마 걷지 않는 거리에 있다. 모텔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모두 무인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층에서 내린다.
욕조에 물이 가득 담겨져 있다. 몸을 담그자 내 몸만큼의 물이 출렁대며 넘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고통이 있어 그 고통이 크면 이렇게 흘러내렸으면 좋겠다. 남자가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남자는 내 머리에 물을 축이더니 샴푸를 묻혀 가만가만히 문지른다. 비누거품이 얼굴로 내려온다. 눈을 감는다. 린스를 바르고 조심스럽게 행군다.
손바닥에 비누를 묻혀 얼굴을 문지른다. 얼굴의 비누기를 물로 닦아 내리더니 내 몸을 안아 일으켜 욕조에 걸터앉힌다. 남자는 때수건을 쓰지 않는다. 손바닥에 비누를 묻혀 몸 구석구석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골고루 문지른다. 남자는 샤워꼭지를 틀어 내 몸의 비누기를 깨끗이 없앤다.
“아버지는 평생 누구에게든 욕 한번 안 해 본 분이셨어. 그런 분이 치매에 걸리시자 욕부터 해대는 거야. 특히 목욕할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면서 욕을 해대는데 민망해서 볼 수가 없었지. 언젠가 욕실 문틈으로 당신이 아버지 목욕 시키는 것을 들여다보았어. 아버지가 욕하고 때리고 소리치는데도 당신은 말 한마디 없이 정성스럽게 아버지 몸을 닦았어. 당신이 성녀처럼 느껴졌어. 어떤 식으로라도 보답을 해 주고 싶어.”
첫날 섹스를 끝낸 남자가 말했다. 그날 이후 주유소 사장인 남자는 나에게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숨 막히는 내 인생에 냉방 온도를 최대한으로 가동해 주겠다는 지하철 안내방송 같은 말을 가끔씩 한다.
“우린 진작 만나야 했어. 너를 만나기 시작한 후부터 내 사업이 불처럼 일어나고 있어. 사업뿐 아니야. 내 몸도 널 생각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달구어지는 걸 느껴. 너 같은 여자는 첨이야. 기다려. 너와 결혼한다. 반드시 할 거야.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고 있어. 아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아내가 죽지 않으면 죽게 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어.”
남자의 멘트는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다. 남자가 떠난다. 그대로 누워 그 집에 재가 서비스를 나가지 말아야 할지 아님 그 남자를 만나지 말아야할지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함께 휴가를 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공상을 한다.
남자가 떠났지만 찜통처럼 더운 날과 지하방을 생각하니 얼른 일어나지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결정을 한다. 뒹굴며 텔레비전을 켠다.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다. 폭염 속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던 농부가 일사병으로 죽은 사건을 보도 한다. 정화조 청소를 하던 인부가 가스에 중독이 되어 죽고, 물놀이 하던 대학생이 익사한 사건을 보도한다. 이번 더위로 6명이 죽고 56명이 치료중이라고 한다. 화면 밑으로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이자 가수 박승하 자살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다.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들에게 핸드폰을 한다. 아들은 받지 않는다. 또 한다. 또 받지 않는다. 계속해서 건다. 계속해서 받지 않는다.
아들이 가끔 전화해서 엄마 괜찮아? 하고 물었다. 그건 지금 죽고 싶을 만치 힘들 다. 엄마 생각해서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내 귀에 들렸다. 나도 가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들 역시 엄마가 지금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 너를 생각해서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듣고 있을 것이다.
서둘러 모텔을 나온다. 지하철을 탄다. 서울대 입구에서 내려 고시촌으로 달려간다. 희망고시원. 학교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복덕방에 물어 보려고 했지만 다들 문을 닫았다. 일천고시원 태광고시원 형설고시원 꿈타레고시원 성림고시원......어디에도 희망고시원은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는 텅 비어 있다. 벤치에 앉아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신호가 두 번 울리자 아들 목소리가 나온다. 휴!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자 정신이 아득해 진다. 핸드폰을 떨어뜨린다. 엄마! 엄마! 땅바닥에서 아들이 애타게 부른다..
“우리 아들 잘 있나 해서....”
전화기를 주워들고 조용히 말한다.
“응 그냥. 그렇지 뭐.”
아들 목소리가 더위 먹은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다.
“별 일 없니?”
별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묻는다.
“낮에 하도 답답해서 병무청에 가 봤어. 근데 아직 판정이 나지 않았는데 안 되기가 쉽대.”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물으나 마나한 걸 묻는다.
“할 수 없지 뭐.”
아들 목소리 끝이 떨리며 목이 잠긴다.
“하지만 엄마!”
아들이 단호하게 부른다.
“.......”
나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가만히 있다
“내가 병무청 직원을 붙들고 울었어. 살려달라고....내 동생과 엄마를 좀 살려달라고.....내가 군대 나가면 우리 식구들 다 굶어죽는다고 울며 매달렸어. 직원이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것저것 묻더군. 나는 아주 애매하대. 이틀이 모자란대. 확실한 대답은 하지 않고 기다리라고 했어”
아들의 목소리에 다시 울음이 섞인다.
달구어진 모래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열대야는 식을 줄 모른다. 제철 만난 모기들이 종아리로 그악스럽게 달려든다. ‘내 동생과 울 엄마 다 굶어 죽는다고요. ’울부짖는 아들 목소리가 귓가에서 자꾸 맴돈다. 여태까지는 아들이 내게 혹이었다. 괜찮은 재취 자리를 아들 때문에 포기했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나는 아들에게 혹이 되어가고 있다.
목구멍으로 무언가 치밀어 올라와 토해져 나온다. 윽윽! 울음이다. 한참을 울다보니 나는 우는 것이 아니고 웃고 있다. 흐흐흐흐 벤치에 앉아 두 무릎을 끌어안고 미친 여자처럼 웃는다. 웃고 있는데 가슴 저 밑바닥에서 복중(伏中) 태양보다 더 뜨겁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있다. 그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살의다. 주인집 여자였다가 자라목 여자였다가 친구들이었다가 나였다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였다가 뒤죽박죽이 된다. 살의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며 한여름 밤의 열기처럼 타오른다.
허리춤에 찬 벨트를 푼다. 벨트 한쪽 끝을 나무의자 틈새에 넣었다가 다른 나무 틈새로 끌어내어 고리를 만든다. 그 고리 안에 내 목을 넣는다. 살의는 더욱더 강렬하다. 나는 천천히 벨트를 조인다. 숨이 막힌다.
그때였다.
“ 찌찌찌지 찌찌찌지.....”
어디선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찌찌찌지....찌찌찌지... ”
가만히 들어보니 풀벌레 소리 같기도 하다.
“찌찌찌지.....·”
이어지는 소리 사이로 가는 끄나풀 같은 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얼굴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