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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바위취를 읽고

조선오이 2014. 3. 23. 09:50

<히말라야바위취를 읽고>

 

단편소설집을 손에 든 게 정말 오랜만입니다. 

마음에 새긴 건, 더 오래이고....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작품 주인공들이

모두 히말라야바위취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하나 같이 남루하고 고달픈 삶을 견디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남루를 넘어 비루하기까지 한 삶들.

 

언젠가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설산 여행의 후유증인 통증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신산스런 삶을 살아가는 대상을 타자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면에 끌어안고, 가슴앓이 하던 통증은

지극한 따뜻함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크게 다른 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삶을 견디기 힘들 때마다, 오히려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일어나 책을 팔고

손님이 가면 다시 앉아 소설을 쓰고,

치매 어머니 곁에 앉아서, 손주를 돌보며 밤마다 써내려 간 글이 이 소설입니다.

소설은 그녀에게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였고,

때로는 소통이었으며

살아가는 힘이었고, 존재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소설은 견딤, 이었던 것이지요.

 

책을 읽는 내내

닮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체,

주제,

그런 장르적 특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지?

 

그녀의 블로그를 오래 들여다 본 덕으로

익숙해진 분위기 탓인가?

 

아,

아,

그렇구나.

 

- 박완서

 

이런 표현을

그녀가 행복해할 지, 아니면 서운해할 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다음 스토리를 기대하게 하는   

탁월한 이야기꾼.

아픈 상처, 슬픔을 품었지만 성실하게 세상을 사는 평범한 이웃.

그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

조금 더 이어지기를,

마지막 문장마다 아쉬움이, 가슴을 쓸게 했지요.

 

그런 복합적 분위기 탓이었을 겁니다.

 

순무,

히말라야바위취,

묵티가온다

그 해 겨울....

 

특히 마음에 남는 이 작품들.

 

하지만 그 절망,

콕콕 가슴을 찌른 통증의 뒤란에

그녀는

따뜻한 희망을 담았습니다.

 

그 매서운 추위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히말라야바위취.

그녀 자신이

히말라야바위취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지나친 사랑이 아니라, 작고 진실한 사랑인가 봅니다.

 

<블로그 독자가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