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기를 마지막으로 알량한 일년 농사를 끝냈다. 아직까지 밭에 남아있는 김장 배추와 무는 남편의 고향 친구가 우리 것도 함께 심은 것이니 김장철에 가서 뽑아오면 되었다.
봄에 상추씨를 뿌리고 고구마 순을 사다가심고 고추모를 내고 옥수수와 오이 토마토 가지 참외 토란 등을 심었다. 허지만 상추와 참외는 씨값도 못했다. 상추는 자주 가지 못하니 어쩌다가 가 보면 웃자라 먹을 수가 없었다. 참외는 장마통에 자라 두 개 밖에 못 먹어봤다. 옥수수는 댓자루를 따다가 아주 맛있게 먹었고 오이는 늙은 오이를 따다가 오이상치를 무쳐 먹었다. 고추농사는 농약을 치지 않으니 두 번밖에 못따고 다 병들어 죽었다. 두 번 딴 것은 남편의 고향 친구가 건조기에 깨끗이 말려 주었다. 오늘 방앗간에 가서 빻으니 여섯 근 반이 나왔다. 김장 하고 우리 일년 먹을 것은 족히 되었다. 고구마는 우리 시골은 밤고구마가 토양에 맞는데 호박고구마를 사다가 심으니 맛이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15킬로 정도 캔 것 같다. '고구마가 달지 않으니 살은 덜 찔 거야.'며 애써 위안의 말을 찾아 냈다.
남편은 바닷가 사람이라 생선이외의 것은 반찬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시골에서 푸성귀를 따다가 먹으니 푸성귀 먹는 맛도 알았는지 군말없이 먹는다. 점심으로는 고구마를 찌는데 그것도 요즘은 즐겨 먹는다. 시골에 내려온 지 일년 만의 변화다.
고구마 밭에 풀이 난 것을 보고 풀과 함께 키워 먹을 것만 채취해 먹는 <산에서 살다>의 저자 이성현씨의 자연농법을 생각해서 뽑지 않았다. 아니 풀 뽑기가 귀찮아서 그 분 농법을 생각해 냈는지 모른다. 허지만 풀이 난데는 고구마가 자라지 못했다. 농작물은 내버려 두지 않고 가꾸어 주어야지 수확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주 어설픈 농사군이 되어 첫해 농사를 지어 보았다. 수확을 할 때마다 그곳에 가느라 들인 휴발유값이 생각났다. 기름값에 비하면 수확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알량하나마 수확의 기쁨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한 해 농사가 끝나 집안에 먹을 것이 그득하다. 가을이면 부자가 된 듯한 이 맛에 봄에 농부들은 힘들게 씨앗을 또 뿌리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