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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가위 후기

조선오이 2009. 10. 4. 23:33

난 친정에서는 밑으로 남동생을 본 둘째 딸이다.

모든 친정일에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우리 부모는 다른 형제들 입시철이면 마음 졸었지만

내가 수헙생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섭섭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마음 편했다.

 

시댁에서는 칠남매 중 막내-며느리로서는 다섯 째였다.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니고,

그냥 아무 소리 없이 살아주기만 하면 시댁에 크게 부주하는 격이 되었다.

그런 존재인 우리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년동안 어머니께 용돈을 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을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놨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릴 주고 싶어서 눈을 감지 못하셨다.

제주 살 때 결국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지금도 어머니께서 진심으로 마음 조이며 지켜보고 계시는 시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늘 가슴 속에 넣고 산다.

 

명절이면 친정이든 시댁이든 어딘가에 그냥 있다가만 오면 되었다.

우리의 그런 위치가 섭섭했는지 작은 딸은 맏아들에게 시집을 가면서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존재보다는 모두가 관심을 갖고 봐주는 그런 존재가 더 좋아"하고 말했다.

시집가서 처음 맞아하는 명절 때 딸아이는 시댁에 음식장만하는 것을 보고는 앓아 누웠다.

마음 좋은 안사돈은 차례를 지내면 제일 먼저 며느리를 친정에 보냈다.

 

올 추석에는 다른 해와는 달랐다.

친정 어머니가 우리집에 계시니 친정식구들이 온다고 했다.

시댁쪽에서는 형님들이 돌아가시거나 아프시어 졸지에 맏일을 남편이 하게 되었다.

결국 추석 음식을 장만하고 성묘하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성묘를 하고 돌아오니 친정식구들이 다 모였다.

게다가 큰 형님 내외가 안 계신 장조카 며느리와 장손에다 우리 두 딸과 사위까지 왔다.

내 생전 우리집에서 이만한 손님은 처음 치룬다.

수저와 밥 공기와 국 그릇이 모자라고 냉장고가 텅 비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남편은 주빈이 되어 신이나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손님 접대하는 남편을 보며 저 사람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하고 놀랐다.

남편의 숨은 재능이 마음껏 빛났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오늘은 그로기 상태가 되어 종일 잠을 잤다.

친정이고 시댁이고 양쪽에서 맏도 아니면서 맏 노릇을 한 이번 추석은

정신이 좀 없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