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배추꽃
배추가 피어난다.
꽃술은 노랗게
꽃잎은 푸르게
배추가 꽃처럼 피어난다.
추워지면 배추는 어린 싹을 감싼다.
추울까봐 한겹한겹......
어머니가 아기를 품듯이
어린 싹을 감싸안는다.
배추꽃
요즘 아침마다 배추벌레는 일을 하고 있다. 벌레들이 밤새 똥을 싸 놓기 때문에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푸르디푸른 배추의 겉잎을 갈아 먹으면 얼마든지 내버려 두련만 벌레란 놈은 그악해서 꼭 노란 고갱이를 파먹는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벌레를 잡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추농사는 아예 포기해야만 한다. 우리 밭에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는다.
버러지 흔적이 있으면 노란 고갱이를 뒤진다. 이파리 하나하나 앞뒤로 살핀다. 그럴 때 나는 꼭 배추의 의사가 된 것 같다. 벌레를 찾아내 제거해주면 비실거리던 배추가 싱싱하게 살아난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란 여건만 맞으면 어떻게든 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는 이맘 때 배추를 솎아내 담는 속음김치다. 무청도 섞어 넣으면 그 맛이 더 하다. 막 빻아온 햇고추가루를 넣어 버무리면 겉절이로 먹어도 좋고 익혀먹어도 좋다.
내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는 시어머니가 계실 때였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처음 따서 태양에다 말려 빻은 고춧가루와 김장배추 솎음을 꾸려주셨다. 밭에서 뽑은 거라 양도 대단하다. 그걸 가져다가 김치를 담아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랬더니 이웃들이 다 찾아왔다. 어떻게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 있냐고.....곰곰히 생각해보니 솎음배추가 비결일 것 같다고 김장밭에 가서 직접 솎음배추를 사다가 담았는데도 그 맛이 안 나더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고춧가루 맛인 것 같다. 고춧가루가 좋으면 아무렇게나 담아도 김치는 실패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자식들 주시려고 직접 고추를 심어 태양에다 말려 빻은 것이니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요즘처럼 건조기도 없어 고추말리는 일이 제일 큰일이었다.
내가 고추를 심어보니 어머니 생각이 절로난다. 그 어렵게 해서 보낸 고춧가루를 의례 주시려니 하고 받아먹었다. 어머니의 큰 사랑도 살아계실 때는 몰랐다.
아머니 돌아가시니 가을이면 그렇게 많이 올라오던 작물들이 뚝 끊겼다. 그때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꼈다.
다시 배추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 해 역시 배추벌레가 극성이다. 늦더위 때문이다. 배추벌레는 노란 고갱이가 앉기 시작하면 더 이상 잡아주지 않아도 된다. 배추 겹이 안에서 나오기 때문에 겉은 벌레가 먹어도 상관이 없다. 또 고갱이가 앉기 시작하면 서늘해지기 때문에 그때는 벌레의 번식도 멈춘다.
추울까봐 한 겹 한 겹 어린 싹을 감싸는 배추를 들여다보며 나는 가신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