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
호도나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호도나무 아래를 살피는 것이다.
가끔 한 개씩 떨어져 있던 호도 알이 요즘은 여물어 대여섯 개씩 떨어져 있다.
호도가 익어가자 우리 집 뜰은 야생동물들은 천국이 되었다.
새벽에 배를 채우기 위해 청솔모가 어슬렁거리며 찾아온다.
소리쳐 내쫓으면 숨어 있다가 다시 온다.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까치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하지만 청솔모는 까치가 우습다.
까치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내고 유유히 호도를 따먹는다.
청솔모가 가고 나면 까치가 호도를 쫀다.
까치가 배불러 물러나면
손바닥만한 새가 오고
그 새가 물러나면 새끼손가락 만한 새가 와 호도를 쫀다.
동물의 세계에도 어떤 질서가 있나 보다.
요즘 산에 밤이 익어가자 밤 먹기도 바쁜지 청솔모의 방문은 뜸하다.
대신 까치가 대장 노릇을 하며 호도를 먹는다.
주둥이가 얼마나 단단한지 단단한 호도를 깨뜨려 쉽게 호도 속을 꺼내 먹는다.
호도는 푸른 과육이 호도알을 감싸고 있다.
호도알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일 것이다.
키가 너무 커서 어떻게 딸까 궁리를 하고있던 차에 잘 익은 호도 알을 뜨락에서 발견했다.
올려다보니 여문 호도마다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호도는 익으면 푸른 과육을 벌려 스스로 누렇게 익은 열매를 떨군다.
호도나무는 심은 사람이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심고 나서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집 뜰에 있는 호도나무는 집보다 더 커 30년은 되었을 것처럼 보인다.
올 여름 우리 식구는 에어콘보다 호도나무 그늘로 여름을 났다.
큰 키로 집 전체를 그늘로 감싸주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그늘진 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곤 했다.
그러더니 가을에 호도 알을 떨구어 준다.
식구들은 심심하면 뜰에 나가 호도를 깨 먹는다.
친정 엄마에게 갈 때 또 옆집에도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지인들이 오면 댓 개씩 들려 보낸다.
낙엽이 떨어져 쓸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비하면 얻는 기쁨이 너무 많다.
이 가을 호도로 인해 호도처럼 꽉 차게 여문 기쁨을 맛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