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를 읽고- 이미루
* 서사의 힘, 강명희 중편소설
'진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소설집 제목이다. 딱 하나를 집어 제목으로 삼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분자 씨와 여재댁과 화도댁 중 어느 한 명도 귀하지 않은 인물이 없었을 것이다.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요 몇 년 읽은 단편소설들에 넌더리가 좀 났었다. 거실과 주방과 카페를 오가는 단순한 서사가 감질났달까. 한때는 심리와 정서를 내밀하게 들여다 보는 소설을 좋아했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현학적인 넋두리를 어루만졌다. 이젠 좀 지겨워졌다. 소설이라면 모름지기 이야기 아닌가.
강명희 소설은 이야기가 살아 있다. 한 사람의 생을 관통하는 큰 물줄기가 보였다. 내가 직접 살아내지는 않았지만 내 삶의 시대와 나란히 가는 듯 중첩되었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애정이 생겼다.
가장 애정을 느낀 인물은 '분천'의 여재댁이다. 사랑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작가는 가부장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을 그려내면서도 거기에 함몰되어 박제화시키지 않는다. 여재댁이나 여재나 어떤 윤리적인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다. 여재댁이 여재를 잊지 못하면서도 방앗간 남정네와 만나게 하는 이야기에서 세상을 품는 작가의 건강한 뚝심과 균형감이 보였다. 지켜야 한다고 하는 추상적 도리와 의무가 오히려 삶을 너덜거리게 한다. 여재를 극진하게 모셔오는 여재댁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에필로그의 윤희가 작가 강명희 같다. 쓰다 보면 언젠가 소설가 윤희로 살 수 있을 거라는 그 믿음이 강명희 작가의 믿음이었으리라.
'어린 농부'는 자연 묘사가 빼어나다. 작가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눈여겨 본 꽃과 풀과 나무와 노을이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작은 꽃 한 송이에서 계절을 읽고 감정이입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 이 시대 시각으로 본다면 화도댁 시어머니의 생각이 비판받을 여지가 많겠지만 그 시대의 보편적 기준에 기댄다면 아버지를 남편을 아들을 바다에서 잃은 여인에게 손자만큼은 그렇게 잃을 수 없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 텐가. 화도댁이 키워낸 어린 농부 경만의 김포 들녘이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이 모자의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이 강화갯벌만큼 김포 들판만큼 기름지고 윤택했으리라.
어둠 속에서도 살구꽃이 떨어졌다. 이미 초승달도 보이지 않았다. P175
개나리가 피면 개나리가 피었다고 울고, 시금치가 실하게 자라면 그랬다고 또 울고... 어머니가 웃고 있으면 집안은 쑥갖꽃 핀 텃밭처럼 환하고 밝아지는 것이다. P179
새벽안개 속을 호박꽃이 호롱처럼 밝히고 섰던 때만 해도 그다지 덥지 않을 것 같던 날씨가 한낮이 되자 달아오른 땅에서 열이 뿜어지더니 금방 한증막 같아졌다. 뒤란에 서 있는 감나무도 검푸른 이파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P198
꿈꾸는 듯 푸른빛의 꽃송이를 가지 끝에 품고 있는 달개비풀이나, 소담히 올라오는 토끼풀같이 부드럽고 연한 풀들은 쇠죽을 쑬 때 쓰려고 한편에 따로 놓았다. P199
경만의 꿈은 들풀처럼 베면 자라고 또 베면 자라면서 가슴 한 복판에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게 자리했다. P200
'잔치국수'는 분자, 신애, 애희의 입체적인 삶의 굴곡에 비해 세 여자의 형상화는 좀 평면적이었다.
신희숙님에게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나도 친구 이ㅇㅇ님에게 선물 릴레이를 했다. 다 읽고 나니 이 뛰어난 이야기꾼을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주변에 아는 사람 많은 지인에게 또 한 권 보내야겠다.
#강명희_중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