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옥수수
옥수수를 보면 하모니카가 생각난다. 노래 때문일까 아님 생김 때문일까. 아무튼 어린 시절 자주 불렀던 동요다. 사오십 년 전에 부르던 동요를 지금까지 부르니 명곡은 명곡이다.
옥수수가 한창 여물어간다.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밭에도 딸 때가 된 것이다. 옥수수를 심을 때 일주일 간격의 시차를 두고 심었다. 한꺼번에 익으면 미처 따지 못하고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급한 옥수수란 놈은 별 차이 없이 여문다.
어린 시절 한 여름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간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옥수수다. 여름 방학 때 점심때면 옥수수와 감자를 꼭 쪘다. 가마솥에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찌면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옥수수 찌는 냄새를 맡으면 식욕보다도 먼저 뜨겁고 더운 부엌 열기가 느껴진다. 금방 찐 뜨거운 옥수수를 들고 한 입 성큼 문다. 그러면 말랑말랑 한 알갱이가 톡톡 으깨지며 달콤하고 쫀득거리는 살이 씹힌다. 나는 그 기억으로 옥수수를 좋아한다. 먹을 것이 흔한 요즘이라고 해도 옥수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옥수수를 따 내고 남은 옥수수 대를 꺾어 입으로 껍질을 벗겨냈다. 그리고 드러난 속살을 씹었다. 그러면 달콤한 물이 나왔다. 물만 빨아먹고 입 안에 남는 찌꺼기는 뱉어냈다. 훌륭한 간식이었다.
또한 옥수수 껍질은 여자애들의 놀이 감이었다. 껍질을 잘게 찢어내 그걸 겨 비누로 빨아내면 색이 노르스름해졌다. 그 껍질을 인형 머리처럼 땋고 놀았다. 하긴 장난감도 인형도 없던 시절 스스로 만들어 내며 놀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한꺼번에 여문 옥수수를 미처 따내지 못해 굳혔다. 할 수 없이 손으로 알갱이를 따서 말렸다가 반은 볶아 차로 겨울 내 끓여 먹고, 반은 강냉이로 튀겼는데 어릴 때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번 맛을 본 뇌가 손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탄수화물이라고 경계하는 옥수수 강냉이였지만 끝장을 본 다음에야 손이 멎었다.
내게 시골 풍경 중 으뜸을 꼽으라면 옥수수 밭이다. 어른 키보다 더 큰 옥수수가 군락을 이루고 서 있다. 키 큰 파초처럼 이파리를 늘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멋진 남성을 연상시킨다.
지금 밭 둘레에 옥수수가 가득하다. 욕심껏 심었지만 수확물을 소화 시키는 것도 문제다. 남편은 취미로 밭작물을 가꾸고 있지만 그것을 따서 소화 시키는 것은 내 몫이다. 주말에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