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소개

[스크랩] 눈길에서

조선오이 2011. 1. 13. 04:30

 

 

눈길을 걸어 산책을 나갔다.

길은 눈이 내린 상태에서 그대로 다져져 미끄러웠다.

볕이 그 위에 쏟아져 내려도 눈이 녹을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이젠도 없이 나선 산책이지만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보자는 심사였다.

 

언덕에는 눈썰매 타는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과

큰 웃음과 힘찬 고함소리들이 범벅이 되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바람이 불었다.

눈에 덮히지 않은 몇개의 갈잎이 뒹굴었다.

갈잎과 함께 비닐 봉지 하나가 하늘을 날랐다.

아이 하나가 손을 뻗치고 비닐을 잡으려고 달렸다.

비닐은 아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람이 멈추고 나서야 아이는 비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플라스틱으로 된 눈썰매를 가지고 언덕을 오른다.

아이는 비닐을 펄럭이며 언덕을 오른다.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며 언덕을 내려온다.

아이는 비닐을 깔고 앉아 언덕을 내려온다.

비닐을 깔고 앉은 엉덩이는 울툴부퉁한 언덕을 이리 치고 저리 치며 내려온다.

한눈에도 엉덩이가 무척 아프게 보였다.

그래도 아이는 주눅들지 않고 다시 당당하게 비닐을 들고  언덕을 오른다.

지금 저 결핌의 기억이 저 아이를 크게 성장시킬 것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아빠가 각자 한개씩 고무대야를 든 한 가족을 만났다.

몸관리를 하지 않아 두리뭉실한 젊은 엄마와 남루한 모습의 아빠였다. 

아이 둘이 그 뒤를 겅중겅중 뛰며 따르고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이 뻘겋게 얼었다.

김장을 하러가는 차림 같진 않았다.

이 한 겨울 눈길을 커다란 고무대야를 끼고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이 기이해 보였다.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아이가 종종 걸음으로 따르며 물었다.

"저기...조금만 더 가면 있어."

"진짜 눈썰매장이 있어?"

"그럼 얼마나 재미있다구. 아빠가 천천히 밀어 줄거야"

아이 둘이 눈썰매 탈 기대감으로 부지런히 엄마 아빠 뒤를 따르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저 엄마 아빠의 사랑이 두 아이들을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게 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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