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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와 우리집 요양보호사 아줌마

조선오이 2010. 6. 27. 23:46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윤정희는 좁은 아파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와 사는 노인요양보호사다.

어느 날 집단성폭행 당한 여학생이 물어 빠져 죽는데 외손주가 거기에 가담한 것을 안다.

윤정희는 합의금으로 500만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자 돌봐주던 노인에게 성접대를 하고 500만원을 구한다는줄거리가

<시>를 배우는 과정과 함께 아프게 전개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엄마를 돌봐주러 우리집에 오는 요양사 아줌마를 생각했다.

아줌마가 집에 오기 시작한 지가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한집에 사는 남편과 엄마 빼고는 가장 많은 교류를 한 사람이다.

정이 많이 들어 이젠 한없이 마음씨 좋은 언니같다.

 

아줌마는 버스가 두 시간에 한번씩 다니는 곳에 산다.

그러면서 1년 육개월동안 늦은 적이 서너번 정도이다. 

비록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지만 아줌마의 그런 성실성이 내게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줌마가 벨을 누를 때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애쓰고 온 아줌마가 안스럽고 고맙다.

한번은 집으로 나간지 1시간 정도 되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걸어서 정류장까지 오는데 15분 걸렸고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아줌마는 이혼하고 집으로 온 딸과, 사업에 실패하고 집으로 들어온 아들 부부와 손주,

그리고 70이 된 머리 허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린 그런대로 살았는데 아이들이 안돼요."

어느 날 아줌마가 언듯 요양보호사 나오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젠 내가 벌어서 사니까 이만큼 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돈을 벌수 있다는 자신감에 아줌마 얼굴은 빛났다.

요양보호사 제도가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있음을 느꼈다.

 

아줌마는 살림의 달인이다. 

아줌마의 손길이 닿으면 무엇이든지 새것처럼 깨끗해지고 빛이 난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살림들이 반듯하게 정열이 된다.

나는 가끔 그런 손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대단한 능력이다.

  

그런 아줌마는 점점 모든 기능이 사그러들어가는 노인네를 모시고 사는 나를 측은해 하고

나는 육십 중반에 보호사가 된 아줌마의 처지를 측은해 한다.

 

영화 <시>를 보고 나오는데 마음이 아프다.

영화 속 윤정희의 처지가 아프고

우리집 요양사 아줌마의 처지가 아프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삶의 벼랑까지 몰린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