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책을 냈다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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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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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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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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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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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01105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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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 |
딸이 쓰는 블로그를 보고
(주)웅진씽크빅 단행본개발본부 임프린트 <이순>이란 회사 직원이 책을 내자고 찾아왔단다.
요즘은 개도 소도 책 낸다는 세상인데 그러다가 말겠지 했다.
어느날 그 직원이 와서 계약금을 주고 갔다고 한다.
선인쇄로 받았다지만 또 그러다가 말겠지 했다.
가끔 '그래 책을 쓰니?' 하고 물으면 '응' 하고 짦게 대답했다.
지난 해 말에 글을 다 써 주었다고 했다.
책장사를 십여 년 해 봤지만 서점에서 한 권도 못파는 책이 허다 한데
만일 나온다고 해도 어느 서점 모퉁이에 꽂혀 있다가 반품되겠지 했다.
2월 5일 책이 나와서 10부 받았다며 일요일날 책을 가져왔다.
<위풍당당 개청춘>
소제목으로는-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초년병의 말단 노동 잔혹사-라 적혀 있었다.
이건 뭔 소리냐. 노동운동을 한 애도 아닌데 말단 노동잔혹사라니.
책을 펼쳐 들었다.
아니 얘 내 딸 맞아?
가만히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낄낄대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한민국 사회초년병의 꿈이 잔혹하게 말살되어 가는 과정이 애처럽게 그려져있는데
읽는 사람은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눈물이 났다.
속도 시원해졌다.
사회초년병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속시원히 해 주었다.
청년 백수의 비애를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는 없다.
팀장님! 우리가 무슨 봉입니까?하고 항의 하고
나는 팀장님이 싫어요 하고 소리치니
얘 이러다가 짤리는 거 아닌가?은근히 걱정 된다.
(그래서 다니는 직장은 밝히지 않았다)
이 책은 <이십대의 이십대에 의한 이십대를 위한 응원서>이란다.
<딴지일보>를 쓴 김어중씨는
"오로지 텍스트만으로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책장사를 하며 한 해 터울로 들어간 애들 등록금 하기가 버거웠다.
등록금 낼 횟수만큼 동그라미 쳐 놓고
해마다 4개씩 지워가며 (큰애하고 같이) 힘겹게 힘겹게 등록금을 마련해 주다가
나중에는 강남에 있는 집까지 팔았다.
지금은 3배가 올라있는 강남집이 처음으로 아깝지 않았다.
내 인생에 있어서 패착-바둑에서 물리고 싶은 딱 한점-은
아이들 키우기 위해 국어선생 자리를 때려치고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것이 패착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딸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딱 문창과 갈 만큼만 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어찌어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날라리로 돌아다녔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넌 학교 공부하지 말고 어학공부도 하지 말고
그냥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고 드라마나 보고 지내라라고 말했다.
난 어릴 때부터 우리 딸의 재능을 읽고 있었다.
회사다니기 싫다고 내려왔을 때
그만 두고 책이나 읽고 빙둥거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못했다.
결혼을 했으니 이젠 오롯이 내 딸만은 아닌 것이다.
다른 집 며느리도 되고 아내도 되니 친정 어미인 내 말은 이미 3순위가 되어있었다.
이제 딸이 에세이스트로 첫 발을 디뎠다.
우리 딸 책은 재미있다. 그리고 시원하다.
누군가가 할 말을 속시원히 대신 해 주는 것 같다.
내가 못한 것을 딸이 해냈으니 내가 한 것보다 더욱 기쁘다.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